100원짜리 잔돈을 만들기 싫어 현금보다 카드를 긁습니다. 100원짜리 몇 개가 모인 몇백 원은 몇백 원어치 값어치를 하겠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수롭지 않으니 의미 없겠다 싶다가, 그 몇 백원이면 부담 없이 생각을 전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의미 없는 의미'와 '기대 없는 기대'라는 아이러니에서 에세이나 칼럼이길 원하는 생각을 싣습니다.
***당신께서.
'어차피 몇 백원짜리 글이니'라며
큰 기대 없이 읽기를 기대합니다
-EssayVia, ColumnVia-***

사람이 벼랑 끝에 내몰리면 신기한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죽음이 곧 닥쳐올지 모르는 사선(死線)에서, 그 죽음을 벗어나기 위한 재주. 저마다의 재주가 있겠지만 나에게 그건 글쓰기다. 그것도 하필 벼락치기 글쓰기. 벼랑 끝에서 벼락으로 글을 쓰는 재주. 물론 지금도. 글쓰기에서 그 사선이란 곧 데드라인(Deadline)이다.
벼랑 끝인 데드라인에서 벼락치기로 글쓰는 재주가 있음을 처음 느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당시 나는 전교 부회장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는 시즌이었고 나는 선배들을 떠나보내는 송사를 써야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졸업식 하루 전에서야 송사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자리 잡았다. 졸업생들에게는 3년짜리 이야기, 혹은 졸업식 하루짜리 이야기. 하지만 난 종일 아무 내용도 쓰지 못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은 등교를 해야했고, 그들을 떠나 보내는 글은 마련되지 않았다.
무사히 등교 시간 안에 학교를 가기 위해선 10분 안에 집을 나서야 하는 아침이었다. 뭐라도 써야했고, 급하게 써야했다. 10분, 생각나는대로 키보드를 쳤다. 떠나는 이에게 남겨진 이가 보내는 편지. 어쨌든 한 장짜리 송사 원고를 썼다. 벼랑 끝에서 벼락으로 글쓰기.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식순에 따라 졸업식이 진행되었고, 송사를 읽는 시간은 길어봐야 3분이었다. 내가 송사를 하면 졸업생 대표가 답사를 하는 순서. 내가 먼저 읽어야만 다음 글이 이어지는 순서. 더이상 뺄 수 없었다. 10분만에 쓴 송사를 읽을 수밖에.
마이크 앞에 섰다. 송사를 읽었다. 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처음 네이버에 검색해본 지식인의 이야기, 불독으로 불리는 학생주임의 이야기. 졸업생들의 이야기보다는 그냥 내 이야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본 적이 없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왔다. 졸업생 대표가 뒤이어 답사를 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식순대로 졸업식은 흘러 식이 마치자 졸업식을 수 십 차례는 겪은 몇몇 선생님이 다가왔다. '아, 급하게 송사 쓴 게 너무 티 났나... 한마디 하러 오시나 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신 지금껏 들은 송사 중 가장 인상적인 송사였다는 말.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그러고보니 졸업생들도 내 송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송사를 할 때 다같이 빵 터지는 부분도, 다같이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기도. 1분 안에 희노애락. 벼락으로 쓴 글에 그게 다 있었던 것이다. 다 끝나고서야 생각한 것이지만.